카라만(Karaman)
카라만은 터키 중남부, 타우루스 산맥 북쪽에 있는 도시로, 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 오스만투르크 등을 거친 4,500년 이상 된, 오래된 역사와 다양한 문화를 지닌 곳이다. 콘야에서 남쪽으로 약 1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 차로 1시간 반 정도 거리인데 이곳을 들러 여정을 잇는 이들은 흔치 않다. 한국인 여행자들도 마찬가지라 카라만의 존재는 그 흔한 블로그에서도 검색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이곳은 여러 시대를 아우른 보물을 간직한 풍요로운 도시이다.
이곳에서 Karaman Müzesi(박물관), Aktekke Camii(자미), Tartanzade Konağı(고택), Çeşmeli Kilise(교회), Hürrem Konağı, Karaman Kalesi(성), Taşkale Tahıl Ambarları(곡물 저장고), Manazan Mağarası(동굴), Dereköy Fisandon Kilisesi 등을 둘러보았다.
봄학기 개강 날짜가 갑자기 1주일 연기되어, 2017년 터키에서의 첫 여행지로 2월 16일에 카라만을 찾아갔다. 16일 새벽 한 시에 카이세리에서 카멜코치 버스를 타고 콘야까지 갔다. 25분 늦게 출발하여 5시 40분에 도착했는데 타는 승객도 없고 내리는 사람이 적다고 터미널 밖에서 내려 주었다. 칼바람이 매섭게 불어 터미널 안 까지 들어가면서 여행을 잘 마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다시 6시에 카라만으로 출발하는 버스가 있어 갈아타고 7시 30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거리에 눈이 싸여 있고 이른 아침이라 카이세리 만큼 추웠다.
카라만 광장이 있는 시내 모습
오토가르(버스 터미널)에서 박물관 앞까지 우리를 데려다 준 돌무쉬(미니 버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물어물어 찾아 간 식당에 진열된 옛날 생활도구들!
따끈한 초르바를 먹고 난 후에 나온 정갈한 아침 식사! 함석 통 안에는 빵이 가득 들어 있다.
카라만 박물관(Karaman Müzesi)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이다.
동전, 의복, 도자기 등 다양한 생활양식이 깃든 전시품은 기본이고,
조명을 밝힌 유리관 안에는 섬뜩하지만 눈길을 앗아가는 미라가 누워 있다.
이 미라는 카라만 도심에서 40km 떨어진 타쉬칼레 마나잔 동굴 5층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박물관 입구 비석에 “하느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더베 주교 미카엘, 여기 잠드시다.”라는 글이 있이 있는데
이것으로 케르더 회육이 ‘더베’인 것이 알려졌다.
<관람시간 오전 8시 30분~12시 30분, 오후 1시 30분~오후 5시, 월요일 휴무>
어느 박물관에 가나 석관의 조각은 세밀하고 멋지다.
카라만 도심에서 40km 떨어진 타쉬칼레 마나잔 동굴 5층에서 발견된 미라.
오른쪽 위에 종이에 붙여 놓은 것은 옷에서 떼어낸 조각이라고 하는데 믿어지지 않는다.
십자가 형상의 장식들
비잔틴 시대의 동전들을 모아놓았다.
로마 시대의 동전들을 모아 놓았다.
등잔의 장식이 매우 아름답다.
커피와 관련된 도구들을 모아 놓았다.
'문 고리'라고 한다.
도자기의 무늬와 모양이 매우 화려하다.
물레를 아주 정교하고 예쁘게, 튼튼하게 만들었다.
박물관 입구에 '하느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더베 주교 미카엘, 여기 잠드시다.'라는 글이 있는 비석.
이것으로 이 비석이 있던 케르더 회육이 ‘더베’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이 비석을 찾아 성으로 가는 길에 박물관을 다시 찾았다.)
아크테케 모스크( Aktekke Camii )
이슬람과 크리스트교를 넘나드는 카라만의 종교 유적지는 카라만에 풍요로운 볼거리를 더한다.
메블라나의 어머니를 모신 ‘아크테케 모스크’는 카라만의 자랑이다.
메블라나와 그의 아버지가 묻힌 콘야의 '메블라나 박물관'에 비해 매우 소박하지만,
사원 앞에 자리한 커다란 나무가 1370년부터 이어온 사원의 유구한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자미 앞 담에 쓰러져 있는 안내판을 세워서 찍었다.
자미 안으로 들어서자, 왼쪽으로 메블라나 친척들의 관이 놓여있다.
앞 쪽 방 안에 메블라나 어머니의 관이 따로 놓여 있다.
나무 장식 틈으로 카메라를 들이 밀고 찍었다.
아크테케 자미 바로 옆에 오래된 하맘이 있었는데 지금도 운영을 하고 있다.
타르탄랄의 집(Tartan Evi)
200년 전의 오스만 전통 가옥인 ‘타르탄랄의 집’에서는 카라만뿐만 아니라 터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나무로 지은 집은 아래층과 위층에 각각 네 개의 방이 있는데,
아래층은 겨울에만, 위층은 여름에만 사용했다.
붙박이장과 샤워실 등은 각 층에 공통적으로 배치했지만 벽난로는 아래층에만 설치했다.
2007년에 복원한 2층은 배, 블루 모스크 등을 그려 놓은 천장 장식이 볼 만하다.
(안내하시는 분이 설명하기를, 이스탄불 출신인 두 번째 부인이 고향을 애타게 그리워하자,
이스탄불을 상징하는 그림들을 천장에 그려 주었다고 한다.) <관람시간 오전 8시~오후 5시>
1층에는 꽃 무늬 장식이 많다.
2층 천장에 이스탄불을 상징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여자들을 위한 방인가 보다.
체쉬멜리 교회( çeşmeli kilise)
아크테케 모스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비잔틴 당시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체쉬멜리 교회’가 있다.
교회 내부 천장에는 프레스코화의 흔적이 아련하지만 크리스트교인들이 제 나라로 돌아간 후 교회는 문을 닫았다.
체쉬멜리 교회 유적은 카라만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교회 안에 들어서니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천장과 벽에 성화들이 남아 있어 무척 반가웠다.
체시멜리 교회에 있던 것을 박물관 마당에 전시했다.
또 다른 고택을 찾아 가는 골목에서 세 아주머니가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고택 구경을 마치고 나왔는데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대화를 계속하고 있다.
어떤 재미있는 얘기를 하길래 추위도 잊은 채.....
Hürrem Konağı
이 집에 사시던 할머니께서 시에 기증을 하셨다고 한다.
다른 방들은 수리 중이라 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사진 위에 있는 드레스는 할머니가 입으셨던 옷이라고 한다.^^
요람도 전시해 놓았다.
이 집을 기증하신 할머니 사진.
거울 테두리의 그림 장식이 예뻐서 찍다가 거울 속에 내 모습이 .....
성으로 가는 도중에 특이하게 나무로 만든 미나레가 있어서.....
(디부리이에 갔을 때 보았던 나무로 만든 미나레가 생각난다.)
저 멀리 성이 보인다.
'카라만 성’의 내성(kahraman kalesi)
12세기 셀주크 제국 당시 세 겹으로 겹겹이 지은 카라만 성은 요새(要塞)와도 같았다.
무려 3km 바깥에 자리했었다는 해자(垓字, 성 주위에 둘러 판 못)와 외성(外城)은 카라만의 위상과 권위를 짐작하게 한다. 최근까지도 복원 중인 카라만 성은 현재 내성(內城)만 남은 상태이다.
사진에서 보니 성이 아기자기하게 예뻐서 직접 보고 싶어 왔건만
공사 중이라 성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돌아 설 수 밖에 없었다. <이 사진은 구글에서 퍼온 것임>
성 안으로 들어 갈 수 있는 문에 채워진 자물쇠가 원망스럽다.
낙서를 하면 2~5년 동안 벌을 받는다고 경고장에 써 있다는데,
그 글이 무색하게 낙서가 여기저기 있다.
성 안에는 못 들어갔지만 밖에서라도 기념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점심 때가 되어 내가 좋아하는 피데 집으로 갔는데,
하양 앞치마를 두루신 요리사가 화덕 앞에서 피데를 만들고 있다.
우리가 가려는 곳에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택시를 대절하기로 했다.
Taşkale Tahıl Ambarları(곡물 저장고)와 Manazan Mağarası(동굴)로 가는 길에 큰 댐이 있었다.
타쉬 암발라 (Taşkale Tahıl Ambarları)
비잔틴 시대, 사암의 무른 바위를 파 만든 350여 개의 곡물 창고다.
대형 비둘기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거대한 바위를 질서정연하게 쌓아 만든 창고는 아주 아름답게 보였다.
내부 온도가 13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 창고에는
50~60톤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양의 곡물을 보관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사람들이 바위를 올라갈 수 있도록 홈을 파 놓았으며, 도르래를 사용한 흔적도 보인다.
곡물 창고 한 켠에 마련된 타쉬 메스짓 사원에서는 곡물 창고의 내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사원은 나무 계단을 통해 편하게 드나들 수 있어 기도 시간이면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자미 창문에서 내다 본 풍경
마나잔 동굴 (Manazan Mağarası)
6~7세기 비잔틴 시대에 사람들이 살아가던 공간이다.
겉으로는 깎아지른 암벽으로만 보이지만 암벽 안에는 5층에 걸친 주거 공간이 오밀조밀하게 놓여 있다.
수백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당시의 입구는 찾을 수 없다.
암벽의 전면부가 무너져 내려 날개를 가진 새들만이 자유롭게 동굴을 드나든다.
사람들은 길이 아닌 환기구(換氣口)로 마나잔 동굴을 찾는다.
가느다란 손전등 빛에 의지해 허리를 굽혀 좁은 굴을 통과하고 환기구에 설치된 수직의 사다리를 기어오른다.
길은 또한 외길이다.
내려오는 데에도 팔과 다리의 근력이 만만찮게 요구돼 적절한 힘의 배분이 필요하다.
악조건을 딛고 찾은 동굴 자체는 그리 큰 볼거리가 아니지만 여행자들의 호기심을 채우기에는 손색이 없다.
<서울 신문 기사 참조>
우리를 택시로 안내해주신 택시 기사분과 함께.
이 기사분이 앞장서서 동굴로 들어가보려고 했지만,
전기 시설이 다 망가져 껌껌한데 핸드폰 후라쉬로 비추어도 잘 보이지 않아 위험하여 금방 나왔다.
멋진 자연 액자에 풍경 사진이 들어간 듯하여 즐겨 찍는다.
언제 저 멀리까지 가서 사진을 찍어달란다. 밑을 보면 아찔 할텐데......
동굴 교회의 모습이 남아 있다. 이 곳에서 기도하며 찬송을 맘껏 불렀을 성도의 모습을 그려보며....
우리를 안내해 주었던 한국어 발음이 아주 세련된 제자와 함께.
밑에서 올려다 본 모습이다.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비잔틴 시대의 문자인가?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
새가 정교하게 집을 지어 놓았다. 우리나라의 제비집 같이.....
우리를 멋진 곳으로 데려다 준 택시와 함께.
기사에게 '내 차'라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빙그레 웃는다.
바람이 무척 차 택시 안에서 커피 타임을 가졌다.
한국 믹스 커피를 기사에게 대접하니 아주 맛이 있다며 고맙다고 한다.
택시 기사가 '데레쾨이 피산돈 교회' 가는 길에 댐이 또 있다고 하며 친절하게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Dereköy Fisandon Kilisesi
교회였던 건물을 그대로 두고 미나레와 미흐랍을 만들어 자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 곳이 교회로 들어가는 정문이다.
자미의 출입구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미흐랍이 정면에 보인다.
미흐랍을 메카 방향으로 만들어 자미로 사용하고 있는 교회 내부 모습.
교회 천장에 성화가 그려 있었을텐데 하얀 회칠만.....
교회로 사용할 당시 설교를 하시던 곳이리라.
교회 출입구 쪽에서 바라본 모습.
예배 시에 빨간 색 카페트 위에 나란히 서서 예배를 드린다고 기사님이 설명하셨다.
자미를 둘러 보고 나가려는데 기사님이 사진을 찍으라고 해서 찍었다.
터키어를 모르니.....
교회 건물에 붙여 세운 미나레의 모습이다.
교회를 나서자 낯익은 풍경이 눈길을 끈다. 어려서 많이 보았던 시골 풍경이....
'한국 약국'이란 간판이 우리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였고 무척 반가웠다.
택시 기사의 말에 의하면,
약사의 아버지께서 6.25 참전 용사여서 그 딸이 약국을 열면서 약국 이름을 이렇게 붙였다고 하였다.
그래서 들어가 보았더니 약국 남자 주인은 외출을 했고,
나이가 좀 든 여자 고용 약사가 그저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 약국 이름을 이렇게 붙인 것 같다고 한다.
아침 식사를 했던 식당에 다시 들어가 저녁 식사를 한 후,
버스 시간이 남아 시내 구경을 하다가 '와이키키'가 보여 쇼핑을 했다.
예쁜 손 뜨개 조끼가 보여 손녀 선물로 두 개를 샀다.
카페에 들어가 다리도 쉴 겸 차를 마시며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오늘 여행 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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